광성보 전투 재현을 위한 제언 - 美軍편
전편에 이어 광성보 전투 당시 미군들의 모습을 살펴 보겠다. 위 사진은 초지진 상륙을 앞두고 전함 모노카시號 선수갑판에 128명의 미해군 육전대 1개중대가 도열해 기념촬영을 한 모습이다. Civil War라고 불리는 남북전쟁을 치르고 불과 6년 정도 지난 시점이니 장교나 하사관, 그리고 고참병사들은 전투경험이 무척 많았으리라 보는데, 사진으로도 자신감이 넘치는 그런 면이 엿보인다.
2002년 행사사진을 보면 미해군 육전대의 군복 색깔을 검정색으로 재현했는데 위 사진같은 흑백사진을 재현자료로 삼았다면 당연히 검정색으로 밖에 안보이겠지만 이 당시 미해군복의 색상은 짙은 청색, Dark Blue였다. 모자도 베레모로 재현을 했는데 해군에서 전통적으로 쓰는 Sennet Hats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나온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흑백이지만 당시 미해군의 군복과 군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사진이다. 이들은 해군이지만 함정을 운용하는 승조원이 아니라 육지에 상륙해서 전투를 벌이는 해군 보병, 즉 육전대(陸戰隊)이다. 당시 해외원정을 할 수 있는 병종이 해군밖에 없었으니 필요한 지상 전투력을 아예 자체 보유 하자는 개념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해병대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으나 이때도 해병대는 따로 존재하고 있었고 신미양요 전투에도 참여를 했다.
세일러복을 입은 사병이 세워 잡고있는 소총은 1861년형 스프링필드 라이플(Springfield Rifle Musket)이다. 남북전쟁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한 개인화기로 조선군 조총처럼 총구쪽으로 장전하는 전장식(前裝式) 소총인데 격발 시스템은 조총보다 두 세대 앞 선 뇌관식(percussion cap 식)이라서 발사속도가 빠르고 비 오는 날이나 습기가 많은 날에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미해군 아시아함대 기함인 콜로라도號의 갑판인데 손돌목돈에서 탈취한 수자기가 걸려있다. 사진 왼쪽에 서있는 한 명이 해군(육전대)이고 오른쪽에 스프링필드 소총을 잡고 서있는 두 명이 해병대원이다. 복장은 육군과 별차이 없어 보이며 상의 색상이 Dark Blue이고 바지 색상이 Sky Blue이기 때문에 흑백사진 상에 바지 색깔이 엷게 나와 있다.
이 사진은 최근 미국에서 남북전쟁(Civil War)시의 전투를 재현한 장면인데, 전쟁에서 승리한 북군의 제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871년의 해병대 복장이 이것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는 유추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조선원정을 온 미 아시아함대의 전체 병력은 1230명이며 이 중 해군 육전대가 641명이고 여기에 해병대 1개중대 118명을 합쳐 총 전투병력 759명이 1871년 6월10일 극동 조선의 강화도 땅에 침략의 군화자국을 남긴다.
1871년 6월10일 초지진을 점령한 美해군 육전대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서있고 그 앞에는 조선군의 불량기포와 면갑들이 흩어져 있다. 뒷쪽에는 미해군 최초의 장교 전사자가 된 美해군사관학교 출신 맥키 중위가 자신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필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이 맥키부대원들이 들고있는 개인화기인데 당시 최신식이었던 레밍턴 롤링블럭 카빈(Remington Rolling Block Carbine) 소총이 그것이다. '레밍턴'은 지금도 저격총의 명가로 널리 알려져있는 제조회사 이름이고 '롤링블럭(Rolling Block )'은 장전, 격발 형식을 나타내며 카빈(Carbine)은 짧게 만든 기병용 소총을 뜻한다. 미군의 제식 개인화기가 아직 '스프링필드 소총' 에 머물고 있던 시기에 이 부대원들이 최신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것은 '맥키부대'가 상륙부대 중에서 최선봉 돌격대임을 말해준다.
총알(탄두)과 화약과 뇌관이 각각 따로인 기존 전장식 소총과 달리 레밍턴 롤링블록은 이 세가지가 하나로 된 현대식 총탄을 사용한 단발총으로 사정거리가 400m에 이르렀으며 '롤링블럭(Rolling Block )'이라는 약실폐쇄기를 여닫는 것으로 장전이 가능한 간단한 구조라서 고장이 없고 다루기가 편리하며 명중률도 좋아 노리쇠 장전식 소총이 일반화되기 전까지 많은 나라에서 사용한 총이다.
이 사진은 레밍턴 롤링블럭 라이플(Rifle) 버전인데 신미양요 1년 전인 1870년 보불전쟁 당시 프랑스가 대량구입하기도 했고 아르헨티나, 덴마크, 이집트,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스웨덴, 스페인 등 많은 국가에서 수입하거나 라이센스 생산을 하는 등 일세를 풍미했던 단발소총이다. 조선에서도 1884년 신식군대인 별기군에서 이 총을 일부 사용했으며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때 시위대(侍衛隊)가 이 총으로 일본측 훈련대와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적군의 총이기도 했고 아군의 총이기도 했던 아이러니한 역사를 가진, 애증이 섞여있는 옛날 총이다.
이 사진은 남북전쟁 당시 전함 Mendota號에 탑재되어있는 9인치 달그렌砲(9-inch Dahlgren)의 위력적인 모습인데 신미양요 때의 아시아함대도 이와 똑같은 거포를 전함 5척에다 70여 문을 싣고 왔으며 육전대의 상륙용 야포 15문까지 합해 총 85문의 포병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정거리 1,564m인 이 함포는 조선의 불랑기포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되는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는 무기이다.
콜로라도호 함상의 수자기 밑을 보면 9인치 함포의 포미부분이 보이는데 옆에 서있는 해병대원들과 비교해 보면 그 크기가 짐작되어진다. 이런 거대 함포에 의해 초지진과 덕진진, 그리고 광성보와 손돌목돈이 초토화된 것이다. 오른쪽에 칼을 빼들고 서있는 장교는 해병대 중대장인 틸톤 대위이다. '조선원정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이며 이는 신미양요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공격부대가 직접 끌고 상륙한 12파운드 야포이다. 원래는 말이 끄는 견인포이지만 사람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끌고 다닐 수 있는 중화기이다. 910m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는 이 포는 공격부대의 바로 뒤에서 신속하게 화력을 투사해 줄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지원화기이다. 실제로 조선군은 이 포의 제압사격으로 인해 조총의 사정거리 내로 접근하기도 전에 번번히 퇴각당했음이 틸톤대위의 '조선원정보고서'에 기술되어 있다.
당시의 미해군을 재현하는데 필요한 자료는 이 정도로 정리가 되겠다. 모쪼록 고증이 제대로 된 재현행사를 기획하는데 유용한 참고자료가 됐으면 좋겠다.
2009-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