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강화도에 있는, 있었던 54개 돈대 중 가장 마지막에 쌓은 작성돈(鵲城墩)을 찾아 나섰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숲이 작성돈이 있는 양사면 북성리 산633번지이고 해안선 철책을 따라 왼쪽으로 7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보이는 아주 작은 동산에는 구등곶돈(龜登串墩)이 있다.

강화도 최북단 돌출부인 양사면 북성리에는 돈대가 네 개씩이나 있다. 양사면 전체로 보면 아홉 개가 된다. 좁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돈대가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여기가 강화도 방어의 요충지라는 뜻이다.
청나라의 위협을 받던 당시의 조선이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하다. 그래서 9개 돈대 중 5개는 현재도 해병대가 사용 중인 현역 돈대이다.

나무 숲 사이에 숨어있는 작성돈이 살며시 윤곽을 드러내 보인다. 지나가며 얼핏 보아서는 알아보기 힘든데 진입로 안내표지도 없고 주차장도 없다.

좁고 긴 농로를 따라 조심 조심 여기까지 들어와서, 농수로에 있는 작은 수문위에다 겨우 주차했다.

수풀을 헤치며 희미하게 남아있는 진입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봤다. 가까이에서 본 작성돈은 여장(女墻)만 없지 몸체는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다.

강화에 있는 52개 돈대 중에 원래의 몸체를 이만큼이나 보존하고 있는 돈대는 두 세 개 정도에 불과하니 작성돈은 돈대계의 귀한 오리지널이다.

멀쩡한 돈대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설명판도 없어 더 썰렁하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돈대 탐방기나 관련 사진 한 장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이 작성돈에는 찾아오는 이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나는 꼭꼭 숨어있는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고, 작성돈은 돈대를 보고자 하는 인간을 아주 오랜만에 맞이하는 듯 싶다.

작성돈은 최초 48개 돈대가 축성된 1679년으로부터 47년이 지난 1726년에 추가로 쌓은 마지막 돈대라서 초기의 축성 형식과는 조금 차이가 난다.

초기 돈대의 정방형에 가까웠던 성돌의 형태가 장방형으로 바뀌고 사이즈도 좀 더 커졌다. 돌을 거칠게 마름질하여 엉성하나마 줄쌓기를 한 것 같은데 허튼층쌓기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막 쌓았다.

돌이 크니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영 성의가 없어보인다. 돌틈 사이 사이마다 성역(城役)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석회 몰탈이 붙어있는 얇은 형태의 벽돌을 성벽 밑에서 발견했다. 여장을 벽돌과 석회로 쌓았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증거가 되니 예사로이 보아 넘겨서는 안될 물건이다.

둘레가 101m인 중형급 돈대인데 포좌가 두 개밖에 없다. 보통 돈대 당 3~4개의 포좌를 가지고 있는데 2포좌 돈대는 이 작성돈이 유일하다.

사실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돈대들은 강력한 화력을 투사하기 위한 포대라기 보다 경계, 경보가 주목적인 해안초소이므로 포좌의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포좌도 다른 돈대들과 마찬가지로 4호 불랑기포 운영에 최적화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불랑기포라는 명칭 때문에 강력한 화포를 떠올리지만 사실 지금의 기관총 정도의 전술적 위상을 가진 무기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저 포좌에 거치된 불랑기포는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선인 예성강의 들머리쪽을 겨냥하고 있다.

수전에 약할 것 같던 만주족의 淸軍이 병자호란 때 수군을 운용했고 갑구지 상륙을 성공시켰던 바, 이는 이후 조선군부의 큰 트라우마가 되었으니 적의 예상 침공로를 단단히 겨누기 위해 이 일대에 작성돈과 초루돈, 철북돈 등을 나중에 추가로 보강한 것이다.

돈대 내부에는 대여섯평 정도 돼 보이는 막사 자리가 도드라져 있다. 남향으로 자리 잡았던 이 터에는 주춧돌, 기왓장 조각 등이 흩어져 있다.

이렇게 돈사(墩舍)의 흔적이 남아있는 돈대가 거의 없었으니 여장까지 포함한 완벽한 돈대 세트의 모범답안을 만들고자 한다면 이 작성돈만한 돈대가 없을 듯 하다.

군사시설보호구역만 아니라면 인근의 제적봉 전망대와 어울어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돈대유적이다. <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