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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신미양요 당시의 광성보 전투가 올 9월20일 재현된다는 기사를 보고, 전부터 이런 재현행사를 주장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자료를 찾아보니 2002년에 이미 이런 행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위의 사진이 당시의 모습인데 강화의 덕신고등학교 학생들이 재현배우 역할을 했다. 

처음 시도된 郡 차원의 작은 행사라서 어린 학생들의 애로가 많았을 걸로 짐작이 되는데 2009년 행사는 인천시에서 진행하고 사극전문 배우까지 동원한다고 하니 규모나 내용면에서 훨씬 짜임새가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아울러 재대로 된 고증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몇가지 오류가  눈에  띄는 2002년 사진을 보면서 당시의 조선군과 미군의 모습을 되짚어 보기로 한다. 

 

진무영 중군 어재연

 

 어재연 장군은 두정갑(頭釘甲) 을 입고 전투를 지휘했을까?

위 사진은 강화역사관에 진열된 어재연 장군의 영정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갑옷인 두정갑을 입고 있는 이 모습을 2002년 재현의 근거로 삼았으리라 짐작되지만  고급 지휘관의 상징이나 의장용으로 존재했을 뿐, 신미양요가 발발한 1871년 무렵에 갑옷을 착용하고 전투를 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이다.

총기, 화포의 발달로 무겁기만 한 갑옷은 이미 효용가치를 상실했으며 가벼운 차림으로 기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점을 알게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280여년 전 임진왜란 때 경험한 바  있으며 현대적인 무기로 발전되어가는 과정의 마지막 과도기라 할 수 있는 이 19세기 중.후반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이런 흐름은 조선군에게도 당연하게 적용이 되던 시기이다.

 

처참히 유린당한 손돌목돈 조선군 지휘부 (1871년 6월 11일 펠리스 비토)

 

위 사진은 전투가 끝난 후, 덕진진 손돌목돈에 설치되어 있던 조선군 지휘소의 처참한 모습을 미해군 사진반의 펠리스 비토가 찍었다. 열분 정도의 시신이 보이는데 이 분들이 어재연 中軍을 비롯한 조선군 지휘부의 주요 지휘관들이라고 판단된다. 두정갑을 입고있는 사람은 물론 없고 모두 구군복(具軍服) 을 착용하고 있는데 동다리(두루마기처럼 생긴 겉옷) 위에다 면갑(綿甲)을 착용하고 그 위에 검정색 전복(戰服)을 걸친 후 노끈이나 위장망 같은 것으로 묶어서 고정을 시킨 모습이다. 그리고 속칭 벙거지라고 하는 짐승의 털로 만든 전립(戰笠)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순무영 천총 양헌수

 

흑백사진이라 당시의 군복을 정확하게 떠올리기가 어렵겠지만 1866년 병인양요 정족산성 전투의 勝將 양헌수 장군의 영정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강화역사관에 칼라로 재현이 잘 되어있는데 다만 전대(戰帶) 부분의 색을 늘어진 부분과 달리 해 놓은게 옥의 티이다.

전대는 긴 자루모양으로 만들어 비상시에 식량 등을 넣을 수 있게 되어있는데 가슴에서 한 번 둘러매고 그 나머지는 앞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장교는 남색 등의 무명띠, 군졸은 무색의 무명띠를 둘렀는데 최고 지휘관의 노란색 띠는 병부(兵符)를 넣어가지고 다니는 주머니이며 유사시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나타낸다.
 
주황색 소매가 달린 옷이 '동다리'이며 소매없는 검정색 겉옷이 '전복(戰服)'으로 요즘 군에서 쓰는 '전투복'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이 복장 세트를 구군복(具軍服)이라고 하는데 <군인이 갖춰 입어야 하는 옷>이란 뜻이겠다. 이 구군복이 지금까지도 사내아이들 돌잔치 복장으로 애용되고 있는 사실을 보면 남자들은 태생적으로 밀리터리 매니아일 수밖에 없는 듯 하다.

 

 

2002년 조선군 병사로 분장한 덕신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검정색 戰服은 원래 소매가 없어야 하는데 여기 사진에는 소매가 붙어있다. 물론 후기로 갈수록 여러가지로 변형된, 간소화 된 전복이 등장하지만 원형으로 재현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않을까...

그리고 여기서 중대한 실수 하나! 무명 전대(戰帶)의 착용을 빠뜨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헐렁한 바지를 입고 허리띠 안한 것과 같고 현대의 군인이 철모쓰고 소총들고 전투하러 나가면서 탄띠를 안차고 나간 것과 똑같은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면갑은 왜 착용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은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그래도 어린 학생들이 6월 땡볕에 애쓴 일이니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이제 본격적인 재현행사에서는 시정이 되어야 하겠다.

들고있는 총의 모습도 당시 조선군이 쓰던 화승식 조총이 아니고 좀 더 발전한 후대의 후장식(後裝式) 소총으로 보여진다.

 

광성보 전투에서 우리 조선군이 휴대했던 개인화기이다. '화승총'이라 한 것은 불 붙은 심지에 의해 점화, 발사가 되는 형식을 나타낸 표현이고 일반적으로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 해서 '조총(鳥銃)'이라고 불렀다.  어린 애들 키보다 큰 조총을 들고 허리춤에는 '조총 탄입대'와 '화약통' 정도는 차고 있어야 기본 군장을 갖췄다고 볼 수 있겠다.

조총은 전장식(前裝式) 총으로, 총구에다 화약통의 화약을 부어 넣은 다음 꼬질대로 화약을 다진 후 조총 탄입대를 이용해 동그란 탄환을 한 발 밀어 넣고 화약과 탄환을 고정시키기 위한 종이를 꼬질대로 다져 넣는다. 그런 다음 점화구를 열어 화약접시에 점화화약을 담아 총신 안에 들어가 있는 추진제 화약과 연결시킨 뒤 용두에 불붙은 심지를 끼우면 발사 준비가 끝난다. 적을 겨누고 있다가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면 방아쇠를 당겨 발사한다. 나로호 발사 만큼이나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유효사거리는 120m 정도에 불과하다.

 

병인양요(1866년)을 겪고난 후 대원군의 명령하에 30겹의 면을 누벼 총탄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탄조끼 면갑(綿甲)이다. 면의 섬유질이 탄환의 운동에너지를 소멸시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인데 30겹의 두께는 조총 발사시험을 거친 후 결정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미군 소총의 위력을 감안하지 못한 잘못된 데이타임이 드러났다. 광성보 전투 당시 강화 진무영 소속  군사 400명은 몰라도  6월 3일 어재연장군과 함께 증파된 京軍 600명은 특별히 만든 이 면갑을 모두 착용했을 것으로 본다.

도장으로 찍은 듯한 문자와 문양은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부적으로 보인다. 방탄(防彈), 피탄(避彈)을 염원하는 간절함이 엿보이는데 이런 요소들이 전투에 나서는 병사들의 사기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병참 지휘부에서 아예 목판 인쇄로 대량생산했음을 보여준다. 월남전 때 우리 병사들이 방탄부적으로 여자 팬티를 입거나 소지하고 다녔다는 유명한 일화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불랑기포

 

미군이 초지진을 점령한 후 찍은 사진 속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조선군의 화포가 바로 이 불랑기포이며 미군이 본국으로 가져간 전리품 중에도 총포류에선 조총과  불랑기포만이 있다. 이는 당시 전투에서 조선군이 주력화포로 불랑기포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조선에는 다양한 총통들과 대완구, 홍이포, 호준포 등 여러 종류의 화포들이 존재했지만 훈련부족에서 오는 조작의 어려움과 군수지원체계의 복잡성 때문에 다 제껴두고 오직 불랑기포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하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여겨지며 결국 불랑기포만이 선진 군대와의 전투에서 그나마 쓸만한 성능을 발휘했음을 말해준다.

불랑기포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를 통해 들어온 포루투갈 화포로 불랑기(佛狼機)라는 명칭은 프랑크(Frank)의 한자식 음역이다.  역사는 오래됐지만 당시 화포 중에서는  유일한 후장식(後裝式)으로 다루기가 간편하고 미리 화약이 장전된 여러개의 자포(子砲)를 결합하여 발사하는 선진 시스템이어서 빠른 연사가 가능한 우수한 성능을 가진 화포이다. 사진에서 보듯 포신을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특히 근접전에서 유리한 무기였지만 폭발탄을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조란환(鳥卵丸) 이라는 새알만 한 납구슬을 한꺼번에 여러개를 넣고 쏘아대는, 이를테면 대형 산탄총과 같은 역할을 했던 중화기이다.

적의 예상 접근로마다 몇 문씩 은밀히 배치해 놓고 몰려오는 적군의 밀집대형을 향해 번갈아 가며 산탄을 발사하는 등, 방자(防者)의 이점을 잘 살리는  전술을 구사했더라면 그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美軍편이 계속됩니다.) 

200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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