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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돛대를 달고 유유히 강화도 앞바다를 항해하는 조선시대 조운선의 모습입니다. 이 배의 항해로를 따라가 보면.. 삼남지방의 세곡(稅穀)을 싣고 강화해협의 좁은 수로를 지나 연미정이 보이는 뱀섬 앞에서 우회전하여 한강으로 접어듭니다. 조금가다 좌회전하면 임진강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대로 직진하여 西江(이 동네에 서강대학교가 있죠..)까지 거슬러 올라가 거기에 있는 廣興倉(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이 있죠..에다 漕運米를 부려놓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옵니다.

 

펠리스 비토 (Felice Beato)

위 황포돛단배 사진은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해군 조선원정함대에 종군 중이던 사진작가 펠리스 비토(Felice Beato) 가 찍은 것인데 세곡 수송의 임무를 마치고 아랫녘 고향으로 가기 위해 막 강화해협을 빠져나와 동검도 앞 넓은 바다로 진입하는 순간, 마침 강화해협의 수심을 측량하기 위해 정박지인 물치도(작약도)를 떠나 초지진 쪽으로 접근하던 미해군의 포함인 모노카시호와 마주쳤고 이때를 놓치지 않은 펠리스 비토가 재빨리 셔터를 눌러 찰나의 순간을 시간의 화석으로 남긴 것이리라... 

어떤 자료에는 '미함대와 연락을 주고 받을 때 썼던 범선"이라는 설명도 있던데 물론 화물선이라고 이런 용도에 쓰지말란 법은 없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배가 당시 강화해협을 수도 없이 오가던 조운선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두 개의 돛대에 걸린 황톳물을 들인 누런 돛이 바람맞이를 하고  이물에는 닻줄 물레에 닻이 매달려 있습니다. 뱃전 위에 4개의 큰 멍에(가로지른 나무뼈대)가 걸려 있고 이 멍에의 끝이 삼판(뱃전)을 뚫고 밖으로 나온 뻘목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가운데 돛대는 원래가 저렇게 삐딱하게 세우더군요.

필자는 유치원 다닐 나이 때(1960년)부터 겁도 없이 갑구지 바닷가로 멱 감으러 다녔는데 이때만 해도 갑구지 앞바다에 사진의 조운선과 비슷하게 생긴 돛단배들이 많이 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배들이 짐을 나르는 배였는지 고기를 잡는 배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19세기 중반에 찍힌 조운선 사진을 보고도 그렇게 시간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이때 저장된 갑구지 돛단배의 메모리 덕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용필의 목소리로 듣는 황포돛대는 어쩌면  19세기 역사의 한 순간을 스치듯 지나간 다섯 뱃사공의 심회가 시공을 초월하여 표출된 恨의 메아리가 아닐까...

2010.01.21

 

황포돛대

마지막 석양 빛을 깃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 바다에
떠나가는 저 사공 고향이 어디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우지마라 이 마음이 서럽다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작사- 이용일 / 작곡- 백영호 / 원창- 이미자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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