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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관 제4전시실에 가면 연무당(鍊武堂)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는데 열무당(閱武堂) 사진을 붙여놓고 연무당이라고 설명을 해놨다. 역사적으로는 연무당이 많이 알려져있는데 사진은 열무당의 것밖에 없으니 이 둘을 그냥 조합해 놓은 것일까?  사실 연무당과 열무당은 명칭도 비슷하고 같은 용도를 가진 건물이라 헷갈리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강화에서, 그것도 역사관에서 마저 이것을 혼동한다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이를 바로 잡아줄 곳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이 두 유적지에 대한 확실한 구분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연무당이나 열무당 둘 다  군대 연병장이나  학교 운동장에 서있는 사열대(査閱臺)로 보면 된다. 지금이야 거의 콘크리트로 짓지만 조선시대에는 당연히 전통 건축양식인 기와집으로 짓고 당호(堂號)를 붙여 놓았다.  열무당(閱武堂)은 진무영(鎭撫營), 그러니까 강화해역경비사령부 영내 연병장의 사열대이자 로열박스이다. 평소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는 교련관(敎練官)이 구령을 붙이던 곳이고  일년에 한번 군사들의 훈련 성과를 평가하고 사열할 때는 진무영의 최고 사령관인 진무사가 앉아서 참관하던 곳이다.

 

지금은 상가 건물이 자리잡은 강화읍 상시장 터가 이 때의 연병장이었고 군 농협 건물(현 은혜교회)이 있던 자리가 바로 열무당이 서있던 자리이다. 이는 1876년 초, 운양호 사건 이후 조일회담(朝日會談)을 하기 위해 강화에 왔던 일본 대표단 수행원 하전기일(河田紀一)이 촬영한 여러장의 사진에서 확인이 된다. 위 사진을 보면 일본이 회담 대표단을 파견하면서 군대를 함께 보냈음을 알 수 있고 당시 최첨단 무기인 개틀링 기관총 4정을 바로 이 열무당에다 거치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지근 거리에 있는 중영(中營, 현 강화읍사무소)에서는 조일회담이 진행 중이었으니 이는 조선의 회담 대표단을 겁박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년 전, 열무당이 있는 진무영의 연병장에서는 더이상 군사훈련을 하지 못하고 대신 서문 옆 동락천변의 넓은 터를 확보하여 외교장(外敎場)이라 이름 붙이고 야외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때 여기다 새로 지은 사열대가 바로 연무당(練武堂)이다. 1870년  당시의 문장가인 해사 임승익(海史 林承翼)이 지은 연무당 상량문(上樑文)에 보면 . " 惟玆中軍之厥有閱武之堂 三面之人家相連難乎 馬群之馳驟百步之地勢甚窄  이곳 중군의 휘하에는 열무당이 있었지만 삼면에 인가들이 연이어 있어서 훈련하기 어렵고 기병들이 말달리기에는 백보의 거리밖에 안되 매우 좁았다." 라고 새 야외 훈련장을 만든 이유를 썼다. 

그리고는 "人無之於避雨 徒傳設戎幕之墟 事有關防秋拒緩起畵棟之制 旣廟謨之裁決 亦輿論之詢同 風斤斫南山之材 樂趨功於群匠月棹輸西島之石 戒勞力於衆民朝夕 언덕에 병사들의 막사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비를 피할 곳도 없었으니 이것이 오랑캐들을 막는 일에 관련되어 있는 바 어찌 허술하게 지을 수 있으리오 이미 조정의 결재가 났고 여론도 이에 발맞추니  남산의 목재를 베어와  많은 목수들이 이를 잘 다듬어 짓고, 한달만에 서도에서 석재를 배로 싣고 왔으니 밤낮없이 수고한 백성들의 노고를 알리고자 한다." 라고 하여 새로운 훈련장의 사열대인 연무당(練武堂)의 건축 취지와 과정을 적어 놓았다.

 

"眷彼西城門邊 栖在東洛川上 將臺屹立 面對數千頃平田 操場廣開足容十萬隊大衆  서문통을 돌아보니 연무당이 동락천 위쪽에 세워져 있다. 장대(將臺)가 높이 서있고 수천평의 평야를 마주하니  넓게 펼쳐진 훈련장은 십만의 군사와 구경꾼이라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겠다. " 라며 그 위치와 규모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그동안 보조 훈련장 정도로만 쓰던 공터에 최고 사령관의 사열대인 연무당이 지어지면서 공식 훈련장인 외교장(外敎場)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1876년 2월 27일 보름여 진행되어 온 조일회담이 몇 번의 결렬위기 끝에 타결되어 조인식을 연무당에서 하게 된다. 열무당에서는 회담기간 내내 개틀링 기관총으로 무력시위를 하고, 연무당에서는  조인식을 하니 군사시설 두 곳을 제압당한 꼴이다. 연무당은 지은 지 6년 밖에 안된 번듯한 새 건물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남의 나라 군사훈련장을 함부로 사용하므로써 국력의 상징인 군사력을 무력화 하고자 한 일본의 치밀한 책동이 엿보인다.

연무당은  '朝日修好條規'라고 이름 붙여진 강화도 조약이 조인된 장소라서 우리 근대사에 꼭 등장하는 명소가 됐지만 결코 내세우고 싶지않은 역사에 연루된 애증이 교차하는 유적지이다. 하지만 건물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좀 아쉽기도 하다.  일본측 입장에서는 '修好조규'라고 이름 붙일만큼 만족할 만한 이벤트가 벌어진 장소인데 이와 관련된 사진이 전혀 없는 것이 미스테리이다. 河田이란 자가 보름여 회담기간 동안  강화府內 웬만한 곳은 다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남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촬영할 정도였는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기록으로 남기는 일본인들이 가장 중요한 조인식 장면은 왜 빠뜨렸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무력시위를 했던 열무당은 세가지 다른 앵글로 촬영했으면서 유독 연무당과 그 안에서 벌어진 조인식 장면은 전해지는 사진이 없다. 그래서 역사책에는 누군가가 그린 삽화(Illust)로 대신하고 있다. 이런 장면에서는 역사적 상상력이 좀 필요하다.  필자 생각엔  河田이 일단 사진은 다 찍었으리라 본다. 그러나 자신들 스스로도 인지하는 불평등 조약이기에 훗날 오점으로 남을 일에 시각적 자료까지 보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관련 사진을 폐기했을 수 있고 아니면 불평등 조약에 대한 무마책으로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는 조선측에게 조인식 의전을 일임하여 일본 대표단의 모양새가 안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양측 대표단 중앙의 상석에 조선측 전권대신 신헌(申櫶)이 앉아있는 장면이 떠오른다.어쨌든 일본은 실리를 얻었다.

 

위 사진은 연무당을 향해 셔터를 누른 사진이기는 하다. 그러나 너무 멀리서 찍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이 사진은 새시장 입구 쯤에서 서문 쪽을 향해 앵글을 잡았는데  유난히 흑백 화소가 뭉개져서 강화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나마 알아볼 수가 없다. 현재 '연무당 옛터' 표석이 서있는 자리 쯤에 건물 형체가 보여야 하는데 뭔가가 가려진 모습이거나 사진 수정한 흔적으로 보인다.
연무당은 아마 열무당과 거의 같은 모습이 아니였겠나 짐작해 본다. 당시엔 연무당을 '新열무당'으로도 불렀으니 용도가 같고 건물 모양새가 같은 점이 반영된 호칭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또 한가지 착각하는 역사인식 중의 하나가 연무당이나 열무당을 군사훈련장의 통칭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 군사훈련장은 교장(敎場)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용어는 지금도 쓰고있는 말이다. 예비군 교장,각개전투 교장, 시가지전투 교장 등등..

 

서문 옆 훈련장을 외교장(外敎場)이라고 했고 얼마 후 이 외교장이 동문 밖(강화중학교 자리)으로 옮겨갔을 때는 동교장(東敎場)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연무당이나 열무당은 교장 내에 있는 여러 건물 중의 하나인 사열대의 이름일 뿐이다. 연무당 상량문에 씌여있듯이 외교장(外敎場)의 크기가 사람 십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라고 했으니 여기에는 사열대인 연무당 외에도 여러 건물들 이를테면 막사나 무기고를 비롯해 식당이나 화장실 같은 부속 건물들도 있었을 것이니 '연무당=외교장' 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연무당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인정해  외교장(外敎場)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쓰였지만 알고 쓰는 것과 몰라서 헷갈리는 것은 분명히 구분되어야겠다.

 

그런데다가 열무당의 경우는 도가 더 지나쳐 아예 '열무당=진무영'으로 알고 있는 역사학자까지 있으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열무당을 복원해 놓고 진무영을 복원했다고 할 사람들이니 21세기 초두부터 강화역사가 위태위태하다.

2003년 발행한 '신편 江華史'  中券의 544쪽을 보면 <진무영(鎭撫營)은 1684년(숙종 10)에 세운 건물로 강화유수가 무관병사들을 열병하는 곳으로 열무당(閱武堂)으로도 불렸다. 또한 연무당(鍊武堂)은 진무영이 좁아 1870년(고종7)에 새로 지었는데 신열무당이라고도 했다.>로 기술되어있다.
진무영(鎭撫營)은 건물이 아니고 열병하던 곳도 아니며 열무당은 더더욱 아니다.

강화역사가 강화에서, 강화사람들에 의해 잘못 쓰여지거나 왜곡되면 이것은 바로 잡을 데가 없다.

200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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