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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동네 길목의 구멍가게에 사는 이녀석은 스피츠種 암컷으로 이제 두 살 정도 된 '메리'입니다.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24살의 꽃다운 처녀시절에 해당합니다. 스피츠들이 대개 그렇듯이 덩치는 작지만 영리해서 주인을 잘 따르지요.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활동적이며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애완동물이나 어린이들과 잘 어울리고 주인을 잘 따라서 애완동물로는 이만한 놈이 없지요. 어렸을 때 어른들 伏날用으로 변견을 몇번 키워 본 이 후, 애완견은 키워 본 적도 없고 별로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이녀석을 보면 한번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리하고 기품이 있는 개입니다. 이 스피츠가 의외로 우리나라 애완견계에서 그렇게 숫자가 많지 않다고 하네요.. 요즘에야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인데 90% 이상은 일본에서 개량된 '재패니즈 스피츠'라고 합니다.
이녀석은 메리의 이웃에 사는 다섯살짜리 퍼그 암컷 '또또'입니다. 퍼그種은 넓적한 얼굴과 쭈글쭈글한 주름이 특징으로 그렇게 호감이 가는 얼굴은 아니지요.. 인간 나이로 치면 39살 먹은 이 노처녀가 아직 시집을 못간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퍼그는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이 길렀던 애완견으로 유명하지요. 역사적 인물에게 사랑받았던 역사적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상의 고향이 티베트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개량되어 중국이 원산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영리해 보이지는 않지만 고집이 세고 좀 과격해 보이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7시면 주인 아주머니가 산책을 시키는데 출발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주인이 나올 문을 마구 긁고 짖어대며 횡포(?)를 부립니다. 노처녀의 히스테리 같지만 하루종일 집에만 있다가 유일하게 바깥세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니 그녀에게는 너무나 금쪽같은 시간일껍니다.
산책길에 구멍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메리를 만났지만 서로 데면 데면합니다. " 메리야 잘잤니? " " 또또언니 안녕? 산책하세요? " 정도로 끝내고 각자 지 볼일 봅니다. 하긴 매일 보는 39살 노처녀와 24살의 쌩쌩한 처녀가 만나서 뭔 할 얘기가 있겠습니까.. 세대가 틀리니 대화도 잘 안통할 거고 種이 틀리니 성격이나 취미도 많이 다르겠지요. 여튼 반가워하지도 않지만 결코 싸우는 일도 없더군요.. 무엇보다도 우선 또또가 마음이 급합니다. 그녀의 산책코스에는 동네 전봇대와 담벼락 모퉁이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어제 하루동안 어떤 냄새들이 새로 묻었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개들의 후각능력은 인간보다 백만배나 더 뛰어나답니다. 1,000,000倍라는 수치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능력인지 얼른 다가오지는 않지만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봤던 것을 예로 든다면 어떤 사람의 팔뚝을 두어번 문지른 거즈의 냄새를 맡은 개가 그 냄새를 추적해서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숨어있던 냄새의 주인공을 찾아내더군요. 특별히 훈련받은 개이긴 하지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임에 틀림없습니다. 냄새 분자를 쪼개서 분석할 정도의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개들은 본능적으로 전봇대 같은 곳에다 오줌으로 자기의 흔적을 남깁니다. 영역표시가 우선이지만 이것으로 다양한 의사를 표현하고 또 주고 받습니다. 오줌으로 얼룩져 있는 곳에 코를 대고 한번 킁킁 거리기만 하면 누가 다녀갔는지..이 동네 짱이 누군지..새로 전입 온 녀석이 있는지.. 암놈인지 숫놈인지..나이가 몇살인지..결혼할 때가 됐는지 안됐는지.. 키가 큰지 작은지.. 건강한지 병들었는지..등등을 바로 읽어냅니다. 정보가 많을 때는 코를 박고 한참을 벌름거립니다. 그리고는 꼭 그 위에다 자기 오줌을 몇 방울 덧칠해 놓고는 다음 전봇대로 발길을 옮깁니다. 주인의 끈에 묶여 산책을 할 때도 이 과정이 안끝나면 주인이 가자고 해도 안가고 버팁니다. 그래서 간혹 고집이 쎄다고 주인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개들 세계에서는 이걸 못하면 개취급 안해주지요
이녀석은 페키니즈 10년생 수컷입니다.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이니 이 분이라고 해야 할까요?..ㅎㅎ 이 동네 최고참으로 이름이 '뭉치'인데 젊었을 때나 어울렸을 법한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너무 조용하게 살고 있거든요.. 늙어서 기력이 떨어졌는지 세상사,인간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밥주는 사람 외에는 누가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하루종일 나무 그늘 밑에 턱 깔고 엎디어 두 눈 지그시 감은 채 도를 닦는 걸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럴 때 "뭉치야! 이리와봐!" 하고 부르면 한 쪽 눈만..그것도 눈꺼풀 1/3 정도만 열어서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 다시 닫아 버립니다. 이런 뭉치 할아버지가 절대 빼놓지 않는 일이 있는데 바로 동네 전봇대 순례입니다. 그것도 하루에 두세 번씩 그 많은 전봇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검색 들어갑니다. 노화 때문에 메시지 해독능력이 좀 떨어져서인지 코를 쳐박고는 소믈리에가 포도주를 음미하듯 한참동안 진지하게 냄새를 읽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반드시 뒷다리 하나를 번쩍 쳐들고 리플을 답니다. " 또또야! 여기 3번 전봇대 게시판에 와보니 너의 페로몬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동을 한다. 마흔이 다 되도록 시집 못간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만 너무 들이대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한다. 여자가 마지막 자존심까지 팽개치면 개고생하게 되니 좀 자제하기 바란다. -村老로부터..
뭉치는 이 동네 개세계의 村老입니다. 인간들과의 관계에서는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 초연하지만 犬界에서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듯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노구를 이끌고 이 전봇대에서 저 전봇대로 옮겨다니며 많은 개들이 남긴 메시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읽고는 꼬박 꼬박 리플을 달아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젊은 개들과의 빈번한 소통이 그가 아직까지 건강을 지켜가는 비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명감으로 다져진 그의 뒷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여 생을 다 할 때까지 리플 행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직감케 합니다................" 思考뭉치 화이팅!!"
200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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