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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날씨가 너무 좋아 배낭에 달랑 물 한 병만 집어 넣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차 타고 30분 이내의 거리에 있는 갈 만한 산으로는 삼각산,인왕산,북악산이 있는데 오늘은 청와대 뒤에 뾰죽 솟은 산 북악산에 가서 가을 정취도 맛보고 한양도성도 살펴 보고자 한다. 버스를 타고 부암동에서 내려 출발지점인 창의문쉼터를 찾았다.
자하문(紫霞門 )으로도 불리는 창의문이 홍시를 매단 감나무와 함께 가을을 맞고 있다. 한양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데 1623년 인조반정 때는 능양군(陵陽君:인조)이 이끄는 쿠데타軍이 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창덕궁으로 쳐들어 갔고 1968년에는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이 문으로 넘어왔던 살벌한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다. 그러나 2010년 10월에 나는 아름다운 가을추억을 북악산 성곽 돌틈 사이에 새기기 위해 이 문을 지나갔다.
문루(門樓)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0년(영조 16) 다시 세우고 다락 안에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걸었었다는데 지금까지 남아있지는 않다. 사방이 뻥 뚤려 시야는 좋은데 겨울에도 여길 지켜야 하는 수문장졸들은 엄청 추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의문 쉼터에서 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고 출발하자마자 계단이 가파르게 이어진다. 헐떡거리는 와중에도 북쪽을 바라보니 삼각산의 보현봉이 714m의 높이로 우뚝 서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서면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에 보현봉이 뾰죽한 머리를 삐쭉 내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돌고래 쉼터까지 와서 숨을 고르며 내가 올라온 계단을 내려다 보니 1번코스 말바위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다. 이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말 "이 쪽에서 출발했으면 이 가파른 계단 오르느라 고생 좀 했을꺼야..."
'백악마루'라 불리는 북악산 정상이다. 해발 342m의 표석이 북악산의 원래 이름인 백악산으로 박혀있고 옆에는 개방하기 전까지 발칸포 방공포대가 있던 곳임을 알려주는 돌판이 있다. 이 백악산에 청와대가 있으니 대통령 내외 침소를 백악관(白岳館) 이라 해도 될 듯... 그러면 미국 백악관(白堊館)이 아주 싫어 할려나?...ㅎㅎ
정상에 있는 바위 앞에서 인증샷 한 방 !! 등반가 오은선이 사진을 잘못 찍는 바람에 8586미터 짜리 칸첸중가에 올랐느니 안올랐느니 논란이 되는 것을 교훈삼아 342미터 짜리지만 확실하게 찍어둔다...^^ 사실 여긴 젊은 남녀들이 시내에서 데이트 하다 말고도 손잡고 올라오는 곳이다.
바로 아래가 청와대이고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하늘은 참으로 맑고 푸른데 도심의 빌딩들은 뿌옇게 보인다. 몇년에 걸친 서울시의 '클린서울' 만들기 노력으로 공기가 상당히 깨끗해진 것은 사실이라 사진의 모습은 Smog라기 보다 순수한 Fog의 모습으로 보고싶다.
정상을 지나 숙정문, 말바위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온전히 남아있는 도성의 일부 성곽들이 눈이 시리게 파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도열해 있다. 혼자 다니면 돌틈 사이에서 자라나는 작은 풀잎까지도 한참동안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다.
한양도성의 북대문인 숙정문이다. 험준한 산 중에 있어서인지 숭례문이나 흥인지문에 비해 규모가 작다. 각 코스에서 몇 번 마주쳤던 저 아줌마를 여기서 또 만났다. 대학생, 처녀 정도로 보이는 이 여인이 초등학생인 두 아들(조카?)에게 설명해주는 것을 옆에서 슬쩍 들어보니 거의 역사 선생님 수준이었다. 우리의 역사를 소홀히 하지않는 후세대들의 모습에 마음이 뿌듯하다.
질서와 비율과 균형의 미를 추구했던 네델란드의 화가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는 듯 하다. 몬드리안이 1920년대 이런 신조형주의 작품에 몰두하기 직전 혹시 서울에 다녀간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서울성곽을 둘러보다 여기에서 강렬한 추상의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일지도(나의 상상) 모른다. 성을 쌓아도 이렇게 예술적으로 쌓는 우리 선조님들 참 대단하시다.
숙정문 문루의 추녀마루에 어처구니들이 연좌농성(?) 중이다. 왕실관련 건물에만 올라가는 이 雜像들은 각종 액운을 막아준다는데 자세히 보니 멤버들이 막강하다. 맨 앞에 떡하니 앉아있는 삼장법사를 위시해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 서유기팀을 주축으로 입이 두개라는 이구룡(二口龍), 천산갑(穿山甲)등의 무서운 동물들이 가세해서 건물을 지키고 있다.
탐방로의 동쪽 끝인 말바위다. 그대로 더 가면 와룡공원이 나오고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면 삼청공원이 나온다.
새로 만들어 놓은 인공목 계단을 따라 내려온 삼청공원은 1974년에 한 번 와보고 처음이니 36년 만이다. 일부 산책로는 그 때 모습 그대로라는 것을 어렴풋한 기억으로도 확인이 되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데 그 때 옆에 같이 걷던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지 ?.....
삼청공원에서 나와 이 번 탐방의 마무리를 최근에 복원한 경복궁 정문 광화문과 함께 했다. 중앙청(조선총독부 청사) 때려부수기로 시작한 1차 경복궁 복원의 자랑스런 마침표이다.
201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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