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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語雜說

강화 선두포(船頭浦)가 떳다!!

초록잉크 2019. 6. 18. 13:08

경복궁 옆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정문 담벼락에 대형 포스터가 한 장 붙어있는데 거기에는 '강화 선두포'라는 다섯글자가 큼지막하게 활자화되어 있다. 선두포..선두포.. 아! 강화의 그 船頭浦!!

코닐리어스 오스굿(Cornelius Osgood 1905~1985)이라는 미국의 인류학자가 1947년에 2개월간 전등사에 머물면서 선두포 마을의 민속과 생활상을 조사하고 우리의 전통 생활용품들을 수집해 갔다. 

 

예일大 피바디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그 강화의 물건들이 72년 만에 다시 바다를 건너와 여기 전시되어 있다길레 달려와 봤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문화...그것도 강화도라니~

 

오스굿의 시선이라... 여기 초록잉크의 시선도 있다..ㅎㅎ 오스굿 선생이 72년 전 강화에서 뭘 보고 또 뭘 가져 갔는지 흥미롭다. 함 들어가 보자...

 

삿갓과 죽립(竹笠), 옥수수 속대로 만든 등긁개가 있고 더울 때 시원하게 입는 베잠뱅이, 등(藤)토시가 있다..!!

 

 

짚신, 태사혜(太史鞋), 나막신, 고무신 등 다양한 신발이 댓돌 위에 놓여있고 윷과 부채들도 보인다.

 

 

놋쇠주걱, 놋쇠주발.. 개다리 소반에 차려진 한 끼 식사가 소박하다. 무국에 배추김치, 조림 하나가 전부다. 그래도 밥만 고봉이면 OK였던 시절..!!

 

여긴 여자들꺼..버선, 베갯모, 주머니들, 등잔대, 다듬잇돌과 방망이.. 저 반짇고리는 지금 같으면 값 좀 나갈텐데..^^

 

농가의 광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종가래, 괭이, 낫 등이 걸려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망태기들..여러가지 사이즈의 됫박, 그리고 빨래 방망이가 있다. 여기 사진에 나오는 것들은 전부 그 당시에 선두포 마을에서 실제 사용하던 것들이다. 70여 년 前이라 하지만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많이 보던 물건들 아닌가?...

 

2017년에는 민속박물관의 학예사들이 70년 전 오스굿이 했던 방식을 쫓아 다시 이 마을을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간의 변화의 결과를 집대성해서 두 권의 책으로 낸 것이 사진에 보이는 '船頭浦'이다. 구매를 하려 했으나 비매품!

 

선두포 마을의 현재 모습이다.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의 西門에서 내려가면 나오는 마을로, 1706년까지는 앞에 보이는 논이 전부 바다여서 배가 드나들던 浦口였다.
1707년 선두포뚝이 완공되어 간척지가 생기면서 평야를 낀 농촌마을이 됐고 바로 선두보(船頭堡)가 주둔하면서 강화도 남쪽 해안의 경비를 담당하는 군사지역이 되었다. 사진 왼쪽 상단에 초록과 초록사이가 선두포뚝..!!

 

오스굿 선생이 머물던 1947년에 27가구 109명이었는데 선두2리가 된 2017년 현재, 40가구에 8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낯선 이방인의 시선이 낯설지 않은 것은 내 메모리의 데이터와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서일 것이다. 인류학자 오스굿 선생이 내린 결론은 아마도 평범한 진리의 확인이지 싶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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