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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도)과 경기도 김포시 사이에 있는 남북 방향의 좁은 해협()이다. 마치 강()과 같다 하여 염하(鹽河)라고 부르며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엔싸이버 백과에 나와있는 염하(鹽河)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그러나 백과사전인데도 정확한 어원이나 유래에 대한 언급은 없고 "마치 강과 같다하여 염하라고 부른다"라는 막연한 설명이 있을 뿐이다.
요즘 각종 매스콤의 강화도 관련 기사나 여행기같은 곳에 심심치 않게 이 '염하'라는 별칭이 등장하는데 예전엔 흔치 않았던 일로 어디서 보고 인용하는지 궁금하다. 정보검색과 공유가 쉬워진 인터넷 덕분일까?..
서해 바닷물은 어디나 다 짜다. 1920년대, 초지 쪽에 염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특출나게 여기에만 소금 염(鹽)자를 쓸 일이 무엇이며 바다가 좁아도 바다는 바다이지 어찌 하(河)가 되겠는가.. 하여 강화사람들도 거의 사용하지 않던 염하라는 별칭의 시원(始源)을 이쯤에서 한번 짚어보며 지금처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음을 주장하고 싶다.


강화해협을 일컫는 '염하(鹽河)'라는 별칭은 사실  역사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았고 / 우리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며 / 대상을 정확히 표현한 말도 아닐뿐더러 / 만들어진 경위도 매우 불쾌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염하의 발원지 - 갑고지 짠물

1866년 9월 19일 프랑스 해군의 군함 한 척이 강화해협의 좁은 수로를 따라 천천히 북상하고 있었다. 자국 신부 9명의 처형에 대한 보복 응징을 결정한 프랑스는 세 척의 군함을 동원해 정찰을 목적으로 하는 1차 소규모 원정을 단행하는데 이 날 남양만 입파도에 닻을 내리고 통보함 데룰레드號를 보내 조선의 수도 한성으로 가는 수로를 정찰하면서 먼저 해도(海圖)부터  작성하고 있었다. 

갑구지 나루에 이르자 몇몇 장교들이 배에서 내려 녹슨 총통이 굴러다니는 갑곶돈과 외성(外城)너머 강화읍쪽까지 살피면서 구경나온 순박하고 호기심 많은 강화주민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며 해도제작에 필요한 사항들을 주위깊게 탐문하고 있었다. 이 해도제작팀 중, 나중에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가 되는 앙리 쥐베르(Henri Zuber)라는 견습소위가 한 촌로에게 갑구지 앞바다를 가리키며 이렇게 물었다.

" 저 강물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 
통역을 통해 질문을 받은 갑구지 촌로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저건 강물이 아니고 짠물(바다)일씨다..."
통역을 맡은 리델신부는 짠물을 salée 로 번역해서 쥐베르에게 전했다.
" 오~ Rivière Salée !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요.. " 
海圖 그리는 일을 맡았던 쥐베르 소위는 해도의 갑구지 앞바다 부분에 "Rivière Salée"라고 적어 넣었다. 프랑스어로 Salée는 영어의 Salty와 같은 뜻의 형용사로 "짠 / 짭짤한 / 염분이 있는"의 뜻을 가진 단어다. (Rivière는 영어의 River)

위의 대화 내용은 필자가 나름대로 구성해본 것이지만 쥐베르 소위는 1873년 프랑스 잡지 '르 투르뒤몽드'에 기고한 '조선 원정기'에 강화해협을 Rivière Salée로 명명하게된 경위를 분명히 적어 놓았다. 이 조선 원정기가 최근 국내에서 '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병인양요에 대해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내용이고 당시 강화도 주변을 묘사한 스케치 작품들도 함께 수록되어서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최초의 염하와 그 증거

1년 뒤인 1867년, 일본 해군성 水路局은 프랑스에서 이 해도를 입수한 뒤 일본어로 번역하여 다시 펴내는데 바로 위 사진에서 보는 '고려서안 염하지도(高麗西岸 鹽河之圖)'이다. 북쪽 연미정에서 부터 남쪽 황산도 앞까지 약 22Km에 이르는 강화해협을 두 장의 해도에다 나눠 그렸는데  Rivière Salée를 염하(鹽河)로 직역해서 해도의 제목으로 삼았다. 위 사진의 해도는 강화해협을 두 장으로 나눠 그린 것 중의 한 장으로 강화해협 윗부분 절반을 그려 놓았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이 해도를 찾아내 필자의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강화해협을 염하(鹽河)로 바꿔치기 하고 , 바닷길을 한낱 강줄기로 폄하한 범인을 드디어 은신처에서 찾아내 수갑을 채워 잡은 수사관의 통쾌함을 느꼈다.

해도 우측 상단에 보면 이 해도가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제독 휘하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고 일본은 이 해도를 프랑스 해군 해도고(海圖庫)에서 돈 주고 사 온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 자료를 보면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지도제작 기술이 상당히 뛰어남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위성사진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밀하고 특히 갑구지나루와 대안인 문수산 일대는 지형까지 자세히 묘사해놨는데 프랑스나 일본은 결국 여기를 조선 침략의 시발점으로 삼고 말았다. 1866년 10월 15일 강화부성(江華府城)을 점령한 프랑스 해군 전투부대가 처음 상륙한 곳이며 1875년 일본이 운양호 사건을 일으키고 결국 군대를 상륙시킨 곳이 바로 여기이다.

 

★ 염하의 확산

일본 해군만 이 프랑스製 해도를 입수한 것은 아니다. 5년 뒤인 1871년 신미년에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책임 추궁과 개항을 목적으로 내침했던 美海軍도 이 프랑스 원본을 편집한 해도(Compiled from French chart No.2618)를 갖고 강화도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미해군역사센터 홈페이지(www.history.navy.mil)에는  해군사편찬협회에서 발간한 책자 "1871년 해병대의 한국 상륙작전Marine Amphibious Landing in Korea,1871)"의 내용이 실려있는데 여기에 첨부한 사진 설명 문구 중에  'Salée River'가 보인다.  River는 영어지만 Salée는 프랑스어 표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Salée River'를 강화해협의 고유명사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는 이방인들의 얘기일뿐 정작 우리 조선은 이 염하(Salée River)라는 호칭을 어디에도 사용한 적이 없다.  강화해협 북단에서 만나게 되는 한강하류를 조강(祖江)이라고 하는데 상대적으로 이 조강은 조선시대 각종 지도에 자주 표기되는 우리 고유의 전래 지명이다.  무심히 흐르는 강화해협의 바닷물을 뒤로 한 채  그렇게 19세기가 저물어 갔다.

 

 20세기에 들어서서 鹽河 (Salée River)라는 별칭이 좀 더 알려지는 계기가 발생한다. 일제는 한반도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1914년부터 1918년까지 한반도 전역에 대해 측량을 실시하고 1대 5만 지형도를 제작한다. 지도제작 사업과 병행해 1914년에는 부(府), 군(郡), 면(面), 동(洞), 리(里)의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고, 아울러 지도에 표기되는 행정구역 명칭을 비롯해 취락, 도로, 산지, 하천, 평야, 해안, 숲, 주요 시설 등의 지명을 일본식 한자로 정비해 버렸다.

바로 이 지도에 강화해협을 염하로 표기한 것은 물론이다. 50여 년 전에 사용했던 '고려서안 염하지도(高麗西岸 鹽河之圖)'가 이의 근거가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화군 선원면 연리와 김포군 월곳면 포내리 사이의 해협에다 鹽河라는 글자를 크게 박아 놓은 이 지도는 강화군이 2003년에 발간한 지도책 '江華 옛地圖'의 198 -199쪽에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 이 지도의 일부를 확대해서 게재한다. 


★ '염하' 별칭 사용의 심화

이전에 염하가 표기된 지도들은 해도(海圖)였고 군용이었기 때문에 일반인이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 일반 지형도에 표기됨으로써 일반인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화해협은 학문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노출빈도가 그렇게 높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와 일본이 작명한 이 별칭이 더이상 확산되지는 않았다. 일제가 만든 지도에 강화해협을 염하로 표기했다 한들 굳이 끄집어 내어 쓸 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던 것이 2000년을 전후하여 '염하'라는 별칭의 사용빈도가 급증하게 된다. 강화관련 각종 논문에서 부터 보고서, 탐방기사, 칼럼, 여행기 등에 이르기까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강화해협을 염하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여러 사학자들의 집필로 이루워진 2003년판 '신편 강화사'를 들 수 있다. 강화해협을 언급해야할 장면에서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염하'를 썼다. 그래도 염하는 좀 나은 편이라고 할까?  어떤 이는 '염하강'이라고도 썼는데 중복의 대명사인 '驛前앞' 과 같은 경우가 되겠다. 

필자는 이런 현상의 출발점을 1992년판 '강도지명고(江都地名考)'에서부터 찾고싶다. 강화문화원에서 펴낸 이 책은 강화의 모든 지명을 망라하여 설명하고 있다. 일종의 지명사전이 되겠는데 여기에 "강화해협=염하"란 표현과 '염하'라는 지칭이 십 수차례나 등장한다. 이런 흐름은 이 후에 나오는 1994년판 '증보 강화사(增補 江華史)'나 1998년판 '강도의 맥(江都의 脈)'  등으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발간 자료들을 강화관련 역사연구자들이나 집필자들이  참고하고 인용했을 것은 불문가지이니 '염하' 별칭 사용 심화의 출발점으로 지목받기 충분하다. 해당지역의 권위있는 기관에서 내놓은 거의 유일한 자료인만큼 초학자는 물론 전문 연구자들까지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문헌들인 것이다.  강화해협을 '염하'로 부르는 것이 이제 무슨 유행이라도 된 듯 한데... 


★염하의 대안

대안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원래대로 하면 된다. '강화해협'  이보다 더 정확한 명칭이 있을까? 강화해협 네 글자는 강화라는 위치와 해협이라는 지리적 특성까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지명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보가 다 들어있다.  염하는 구구절절 부연 설명을 해줘야 하지만 강화해협은 이걸로 끝이다. 이런 명칭을 마다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약 22Km에 이르는 해협의 어느 특정지역을 가리킬 때는 '강화해협 ○○ 앞바다'라는 식으로 표기하면 명쾌할 것이다. 예를 들면 "강화해협 갑곶나루 앞바다" , "강화해협 초지진 앞바다"라고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한자로 '甲串津 前洋', '草芝鎭 前洋'같은 표기를 사용했다. 지브롤터해협, 도버해협같은  대형 유명 해협은 아니지만 강화해협도 해협이고 해협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결론

● 염하는 우리 스스로 만든 호칭이 아니다. -- 프랑스, 일본의 합작
● 염하는 144년 전 매우 불쾌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 프랑스의 침략 (병인양요), 후에 일본의 침탈
● 염하는 강화해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 바다를 江으로 왜곡, 위치 불명, 별도 설명 필요
● '강화해협' 이 네 글자면 충분하다. -- 별칭이 필요없다.


201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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